하기 싫은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꼭 해야 하지만 유난히 하기 싫은 일이 있다. 학생에게는 단어 외우기일 수 있고, 직장인에게는 미뤄둔 보고서일 수 있고,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일 때가 있다. 이상한 점은 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피하고 싶어진다.
하기 싫은 일은 잠깐 미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에서 더 커진다. 처음에는 작은 숙제였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부담이 되고, 부담이 커지면 시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 미루는 행동은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해야 할 일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은 하기 싫은 일을 없애는 방법보다, 하기 싫은 마음을 인정하고도 시작하는 연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일을 좋아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해내는 힘이 쌓이면, 그 사람의 하루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공부방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장면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단어 시험을 앞두고 단어장을 펼치기만 해도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이가 있다. 문법 문제를 틀릴까 봐 아예 풀기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 아이들은 “너무 많아요”, “못 외우겠어요”, “하기 싫어요”라고 말한다.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단어 외우기는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당장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외워도 또 까먹고, 틀리면 속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기만 하면 실력은 쌓이지 않는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다시 그 단어장 앞에 앉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지금 조금 해두면 나중에 덜 힘들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을 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뜨끔할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는 미루지 말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내 일을 얼마나 미루지 않고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미루는 일들도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도 하기 싫어서 미루는 일이 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막상 책상에 앉으면 다른 일이 먼저 떠오른다. 글을 써야 하는데 제목을 더 고민해야 할 것 같고, 자료를 더 찾아야 할 것 같고, 오늘은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잠깐 웹툰이나 영상을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처음에는 쉬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쉬고 난 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찝찝해진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오늘 내가 피했다는 것을.
이런 순간을 몇 번 겪다 보니 아이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단어장을 피하고, 나는 글쓰기 화면을 피한다. 아이는 틀릴까 봐 두려워하고, 나는 부족한 글을 마주할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하기 싫은 마음 뒤에는 귀찮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기 싫고 부족한 나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숨어 있었다.
작게 시작하면 마음이 덜 무겁다
하기 싫은 일을 미루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려고 하면 안 된다. 단어 100개를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단어 10개만 보자고 하면 시작할 수 있다. 글 한 편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지만, 첫 문단만 써보자고 하면 손이 움직인다.
내가 요즘 느끼는 것은 시작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작이 늦어진다. 반대로 아주 작게라도 시작하면 생각보다 다음 행동이 이어진다. 책을 펼치면 한 페이지를 읽게 되고, 한 문장을 쓰면 다음 문장이 떠오른다. 행동은 생각보다 마음을 빨리 바꾼다.
공부방 아이들에게도 그래서 작은 단위로 끊어서 하게 할 때가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보자”, “일단 이 줄만 외워보자”, “이 문제 하나만 다시 풀어보자”라고 말하면 아이들도 조금씩 움직인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하기 싫은 일을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크게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미루지 않는 하루가 나를 믿게 만든다
하기 싫은 일을 해낸 날에는 묘한 만족감이 남는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조금 단단해진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로 남기 때문이다. 반대로 계속 미루는 날이 많아지면 자신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약해진다. “나는 또 못 했네”라는 생각이 쌓이면 다음 시작도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미루지 않는 연습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 가깝다. 단어를 외우는 아이도, 글을 쓰는 나도 결국 같은 연습을 하고 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있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조금이라도 붙잡는 연습이다.
물론 매일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어떤 날은 미루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도망가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미뤘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다시 책상 앞에 앉고 다시 단어장을 펼치고 다시 글을 쓰면 된다.
오늘도 하기 싫은 일이 있다면 아주 작게 시작해보려고 한다. 책 한 쪽, 문장 한 줄, 단어 몇 개라도 좋다. 하기 싫은 일을 미루지 않는 연습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조금씩 책임지는 연습이다. 그리고 그 작은 책임감이 쌓일 때, 하루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나 자신도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