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물 앞에서 멈춰 선 순간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마음이 멈춰 설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한 아이가 단어를 외우기 싫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영어 단어 몇 개가 뭐 그리 힘들까 싶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 순간이 정말 버겁고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달래며 말했다. “지금 안 해도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해.”
말을 하고 나서 잠깐 조용해졌다. 아이에게는 해야 할 일을 피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에도 꽂혔다. 아이를 가르치려고 한 말이었는데, 어느새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다 보면 가끔 그 말이 가장 먼저 나에게 돌아올 때가 있다. 오늘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나도 해야 할 일을 피하고 있었다
아이를 달래던 중 문득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는데 하기 싫다는 이유로 자꾸 미룰 때가 많았다. 책을 읽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정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괜히 웹툰을 켜고 한 편만 보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편은 두 편이 되고, 두 편은 어느새 한 시간이 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고, 남는 것은 잠깐의 재미보다 더 큰 찝찝함이다.
사실 해야 할 일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그 일을 미루면 결국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그 일을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마주하기 싫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면 부담이 생기고, 부담이 생기면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더 쉬운 자극을 찾는다.
아이와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어 외우기 싫다며 우는 아이와 웹툰을 보며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아이는 단어장을 앞에 두고 울었고, 나는 노트북과 책을 앞에 두고 피했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불편한 일을 미루고 싶은 마음은 비슷했다. 그 생각이 들자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아이에게 “결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 삶에서는 해야 할 일을 계속 뒤로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오늘의 단어가 숙제였고, 나에게는 오늘의 글쓰기와 독서와 정리가 숙제였다. 아이가 단어를 피하면 실력이 쌓이지 않듯, 나도 글쓰기를 피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너무 당연한데, 그 당연한 사실을 아이를 통해 다시 보게 됐다.
선생님의 자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
나는 가끔 선생님의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한 말에 내가 먼저 붙잡히는 일이다. 아이에게 성실하라고 말하면, 나도 성실해야 할 것 같고, 아이에게 미루지 말라고 말하면, 나도 내 일을 미루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의 자리는 편하지만은 않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듣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생님의 태도도 본다. 말과 삶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이 내 삶과 너무 멀어지면 스스로 불편해진다. “나는 저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오늘 아이에게 했던 말도 그랬다. 아이에게는 단어를 외우라고 하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있었다면 그 말은 결국 나에게도 숙제였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감사로 바꾸기
그래도 오늘의 부끄러움이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아이의 눈물과 내가 건넨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모습을 이렇게 선명하게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삶은 누군가를 통해 나를 비춰준다. 내가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오히려 내가 배울 때가 있다.
이 일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해야 할 일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내 앞에 온다. 단어장이든, 글쓰기든, 독서든, 돈 관리든, 삶에서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그렇다.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계속 도망가면 결국 내가 원하는 삶과는 멀어진다.
오늘 아이에게 했던 말을 나에게도 해주고 싶다. 지금 하기 싫어도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한다면, 조금 부족해도 오늘 시작하는 게 낫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단어 하나를 외우듯, 문장 하나를 쓰듯, 해야 할 일을 아주 작게 붙잡으면 된다. 오늘의 깨달음이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겨두면 적어도 다시 돌아볼 수 있다. 아이를 가르치던 하루가 나를 가르친 하루가 되었다.